그래, 다행스럽게 교토가 있어

어느 나라는 하나만 있어도 행복하다는 세계유산이 즐비하여 도시 전체가 박물관으로 불리는 도시. 140여 년 전 도쿄에 수도를 건네주었지만, 간무 천황 시절인 서기 794년 수도 천도 후 1000년 동안 일본의 정치, 경제, 문화를 이끈 천년 고도 교토. 그래서 교토는 일본인들에게는 마음의 고향으로 불리고, 외국인들에게는 일본 문화의 정수를 느낄 수 있는 땅으로 사랑받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일본 역사의 자존심이라 일컫는 교토가 중국 장안성(현재의 시안)을 철저히 모방하여 만든 계획도시라는 점이다. 일본은 서기 600년부터 894년까지 20여 회에 걸쳐 견당사를 파견하여 중국의 문물을 받아들였고, 급기야 장안을 모델로 하여 장안의 4분의 1크기의 복사판 도시 헤이안쿄를 세상에 선보이고 말았다.

교토의 옛 이름은 헤이안쿄. 이 헤이안쿄는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동쪽으로는 카모카와라는 강이, 서쪽으로는 카츠라카와라는 강이 흐른다. 도시는 도성을 모방한 장방형의 구획을 나누고 북쪽 중앙에 궁성을 배치하고 그 앞에 남쪽으로 중앙로인 주작대로, 죄우에는 동서4.5킬로미터, 남북 5.2킬로미터의 시가지를 조성했다. 주작대로의 동쪽은 좌경, 서쪽은 우경이라 불렀다. 그 후 저지대 습지라는 지리적 약점을 지닌 우경은 쇠퇴하고 라쿠요라 불린 동쪽 지역만 발달하여 지금도 교토의 대부분의 관광지나 번화가는 동쪽에 치우쳐 있다.

그 후 헤이안쿄는 1467년 일본의 전국시대를 연 오닌의 난이라는 역사적 사건이 일어나 북쪽 지역 대부분이 불타버린다. 오닌의 난의 수습된 후 당시 최고 권력자였던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주도하에 문인과 무사 마을 건설 등 대규모 도시 개발이 진행되며 헤이안쿄의 크기는 더욱 확장됐다. 지금도 교토 도심을 걷다 보면 도요토미 시절 생긴 마을과 거리 이름이 곳곳에 남아 있다.

지금도 네모반듯 한 이 계획 도시 안에는 천황이 살던 궁인 교토고쇼, 당시 최고 권력가이던 쇼군이 도쿄에서 교토를 방문했을 때 거주했던 니조 성, 교토의 심벌로 손꼽히는 긴카쿠지와 킨카쿠지, 기요미즈데라, 도지, 료안지, 야사카진자, 기타노텐만구 등 무수한 사찰과 신사, 문화재가 깨알같이 박혀 있다. 일본 국보의 약20퍼센트, 중요문화재의 14퍼센트가 교토시에 분포하며, 17개의 문화재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됐으니 오랜 기간 이를 원형 그대로 지켜낸 교토 사람들의 콧대가 하늘을 찌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그런데 여기서 "일본의 옛 수도", "일본인들의 마음의 고향", "도시 전체가 박물관" 등 교토를 상징하는 다양한 별칭에 하나 더 추가하고픈 것이 있으니, 바로 "기적의 땅" 이라는 수식어다.지진 공포에 떠는 일본 열도의 혼슈에서 가장 지진 발생이 적은 지역이며,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일본의 대도시로는 유일하게 연합군의 공습을 피한 복 받은 도시였다. 교토를 지켜낸 건 아이러니하게도 일본인들이 아니라 적군인, 미국, 게다가 그 나라의 수장인 대통령 루즈벨트였다. 루즈벨트는 전쟁 전 교토를 방문했다가 그 독특한 일본다움에 매료된 나머지 미군정에 교토만은 공습하지 말라는 대통령 특별명령을 내렸다고 전해진다. 이 정보를 입수한 일본인들이 교토 인근에 군수 공장을 집중적으로 배치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그러나 1868년 지금의 도쿄인 에도로 수도가 옮겨가면서, 화려했던 교토의 전성시대도 막을 내렸다. 그렇다고 하여 교토가 역사적 유물만을 끌어안고 역사와 함께 늙어가는 도시가 아니라는 점 또한 흥미롭다. 일본에서 최초로 전철이 운행됐으며. 바로 옆 시가현의 비와코의 물을 끌어드리는 치수사업을 벌이며 현대 산업도시로 도약하기 위한 노력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또 화투 제조회사에서 게임기 전문기업으로 성장한 닌텐도, 란제리 브랜드 와코루, 전자부품 회사인 쿄세라 등 세계적인 일류 기업으로 본사가 교토에 있다. 뿐만 아니라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 다나카 코이치가 근무하는 시마즈 제작소도 교토를 대표하는 기업이다.

일본을 대표하는 일본 요리나 사찰 음식, 일본 전통과자, 다도 문화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절 경내 찾집이나 교토다운 카페 등 먹을거리에 있어서도 모방의 도시 도쿄에서는 절대 맛볼 수 없는 진귀함이 가득하다. 일본인들도 앞다투어 기모노 쇼핑을 간다는 교토의 뼈대있는 기모노 숍, 사무라이의 칼을 만들던 칼 전문점, 일본의 다도를 완성했다는 센노리큐 가문에서만 독점 사용되는 찻사발을 만드는 도자기 공방 등 메이드 인 교토를 대표하는 토산품의 내공도 만만치 않다.

뿐만 아니라, 교토대학, 도시샤 대학 등 명문대학을 위시한 42개의 대학이 자리한 학원 도시인 덕에 젊은이들이 많고 그들이 뿜어내는 활기찬 문화도 공존한다. 시간의 덮개로 덮인 수많은 문화재로 꼬부랑 할아버지, 할머니의 도시로 지레 짐작될 터, 그러나 일본에서 가장 빠르게 라멘 맛이 진화하는 나이 듦과 젊과, 전통과 현대가 기막히게 버무려진 도시다. 이 기묘한 도시의 인구는 147만 명으로, 우리의 광주광역시나 대전광역시의 인구와 비슷하다. 일본 랭킹으로 따지자면 도쿄, 요코하마, 오사카, 나고야, 삿포로, 고베에 이어 일곱 번째 대도시다. 그러나 놀라운 사실은 한 해 교토를 찾는 관광객 수는 한국의 총 인구보다 많은 5천만명을 넘는다. 세월아 네월아 여유자적 여행이 콘셉트인 프랑스 할머니 군단도, 버터 발음으로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미국 아저씨들도, 꼭 가이드 북 한 권씩 들고 여행하는 티내는 일본인들도 입을 모아 외친다. 교토로 가요 스타급 문화재가 쏟아지는 교토로 가요~~ 라고..

 

 

 

Tags

Read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