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공식

아주 아주 오래전 일이었다... 4년전 쯤 되었을까..
그래도 아직은 이별은 아니겠지라고 생각하는 순간이 이별의 시작이었다. 평소였다면 잘 말하지도 못했을 법한 모진 단어들을 전화 통화로 쏟아내고는 그 직후부터 정확히 20번은 다시 그말을 되뇌었다. 천장을 보고 똑바로 누워있다가 휙 뒤집어 눕기를 여러 번 반복했다. 그 사람도 적잖이 화가 난 것 같았고, 꽤 실망한 것 같았지만 나는 '에이 괜찮을 거다 뭐' 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시작이었다

서서히 서로에 대해 묻지 않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그 사람이 갑자기 (고상하게 말해) '침묵'하기 시작했고, (통속적으로 말해) '잠수'를 탓다. 세상에서 제일 쓸모 없다고 생각했던 '밥 잘 먹었어?' 라는 문자 메세지를 못받으니까 괜히 소화도 안됐다.

밤 공기가 더위를 누르고 시원해져서 말도 못하게 기쁜데도, 그 사실을 딱히 말할 곳이 없었다. 그 당시 몇 주전에 본 손톱이 꾀나 길었었는데 깎았는지 궁금했고, 직장의 팀장과 사이가 별로인 것 같았는데 일은 잘 풀었는지도 궁금했고, 영화는 언제 보러 갈건지 궁금했지만 도저히 물을 수가 없었다. 하루는 정말 어이 없게도 거짓말같이 우리 집 앞 벤치에서  늘 잘 자던  노숙자가 그날따라 온갖 욕을 퍼부으며 나에게 소주병을 던졌다. 억울하고 화나는 마음을 꾸역꾸역 참다가 시원해서 더 서러운 밤 공기에 대고 킹콩처럼 엉엉 울었다. 그렇게 이별은 시작되었다.

4년전 이별공식이었다.



몇일 전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기 위해 모 미술관을 다녀왔다. 입구에서부터 예사롭지가 않았다. 갖가지 장식과 오랜만에 본 미술작품들이 시간가는줄 모르게 하였다. 미술관 한켠에는 오래된 사진들을 전시해 놓았다. 그 중 케네디가의 부자사진이 눈에 들어온다. 이 사진을 보니 얼마전 가족 외식때가 생각난다.

옛날, 우리 아버지가 한껏 차려입으시고 외식을 나설 때 나는 세상에서 제일 편한 복장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나는 재킷을 입고 외식을 나서지만 아버지는 그저 '편하다'는 이유로 동내 아저씨가 되어 버리셨다.

세월은 나를 청년으로 만들었고, 또 다른 세월은 아버지를 아저씨로 만들어 버린 셈이다. 내 어릴적 그 멋지시던 아버지는 온데 간데 없었다. 다음 외식때는  케네디 부자 사진처럼 슈츠를 입고, 나와 아버지 사이를 벌여놓은 시간을 몰아내고 싶다.

그리고 차려입은 두 신사 사이에는 그 동안 두 남자의 스타일 사이에서 갈팡질팡 하셨던 어머니가 자리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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